문근영 악플 논란을 보면서
Peoples & Opinion/Opinion 2008/11/17 18:30 이글을 되새겨 본다.
중용 : 이 수준이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인 것은 ,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편파적인 관점으로부터 해방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용 수준이하에서는 사물을 이원적이고 융통성 없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이 때문에 흑과 백으로 분명히 가를 수 없는 복잡다난한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편파적인 태도는 극단적인 대립을 초래하고, 대립은 분열과 반대를 낳는다.
동양 무술에서도 유연하지 않는 동작은 큰 약점으로 취급된다.
구부릴 줄 모르는 완고함은 그만큼 부러지기가 쉬운 것이다.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반대와 장애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중용'의 태도는
유연성과 포용력,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파악 능력을 가지게 해준다.
'중용'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결과를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 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패배하거나
좌절하거나 놀라는 일도 없게 된다.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내가 이 직장에 못들어가면 다른 직장에
들어가면 되지" 라고 생각한다.
이 단계는 내면의 자신을 신뢰하는 출발점으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느끼기 시작하며
쉽게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다.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안달하는 일도 없다.
인생에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 인생이
어찌 굴러가든 근본적인 수용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중용'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좋다.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자기 신뢰를 잃지 않는다.
함께 지내기가 쉽고, 친하게 지내더라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그들은 대립이나 경쟁 심리, 죄책감 등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화하고 근본적으로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
그들의 태도는 비난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중용'에 다다른 사람들은 자유를 아주 중시하므로, 그들을 규제하려는
일은 아주 어렵다.
= 의식혁명 중, 중용에 대하여 =
PS. 개인적으로 한국의 정치가 발전하려면 뿌리깊은 보수우파와 좌파가
큰소리를 치고 불란을 만드는 낮은 수준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고 본다.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때 대립과 분열에서
벗어나서 더 높은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PS. 위에 인용한 글은 왜 다른쪽 극단에 서있던 사람이 어이없게 반대쪽 극단으로
가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해주게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극단에 서있지 않지만 , 극단에 서있는 사람들은
모든것을 극단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쪽 극단이 아니다라고 생각되면
그 중간으로 가기보단 다른 극단으로 가기 때문이다.
전혀 반대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의 이해에 있어선 같은 관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뉴XXX 같은 단체의 탄생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을 투명하기 바라보기 보단 그 사실을 왜곡하고 색깔을 입히는데 집중하고
반대를 위한 에너지를 조장하고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PS. 문제는 따지고 보면 양쪽 극단 모두 소수인데
목소리를 내고 주도해가는 사람들이 양쪽 극단이라는데 있다.
중도적 대중은 소외되고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PS.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부류는 "이야고" 같은 부류이다.
오델로의 '이야고' 캐릭은 , 이현세씨 만화의 '마동탁' 같은 캐릭이다.
이러한 캐릭터가 집중하는 것은 꼬투리를 부풀려서 치밀한 작전과 계획으로
모종의 이익을 위해서
끊임없는 '중상모략'과 '이간질' 이다.
이 사람들이 노리는 것은 '대중이 생각하지 못한' 전혀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중용 : 이 수준이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인 것은 ,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편파적인 관점으로부터 해방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용 수준이하에서는 사물을 이원적이고 융통성 없는 관점으로 바라보며
이 때문에 흑과 백으로 분명히 가를 수 없는 복잡다난한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편파적인 태도는 극단적인 대립을 초래하고, 대립은 분열과 반대를 낳는다.
동양 무술에서도 유연하지 않는 동작은 큰 약점으로 취급된다.
구부릴 줄 모르는 완고함은 그만큼 부러지기가 쉬운 것이다.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반대와 장애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중용'의 태도는
유연성과 포용력,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파악 능력을 가지게 해준다.
'중용'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결과를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 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패배하거나
좌절하거나 놀라는 일도 없게 된다.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내가 이 직장에 못들어가면 다른 직장에
들어가면 되지" 라고 생각한다.
이 단계는 내면의 자신을 신뢰하는 출발점으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느끼기 시작하며
쉽게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다.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안달하는 일도 없다.
인생에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 인생이
어찌 굴러가든 근본적인 수용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중용'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좋다.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자기 신뢰를 잃지 않는다.
함께 지내기가 쉽고, 친하게 지내더라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그들은 대립이나 경쟁 심리, 죄책감 등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화하고 근본적으로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
그들의 태도는 비난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중용'에 다다른 사람들은 자유를 아주 중시하므로, 그들을 규제하려는
일은 아주 어렵다.
= 의식혁명 중, 중용에 대하여 =
PS. 개인적으로 한국의 정치가 발전하려면 뿌리깊은 보수우파와 좌파가
큰소리를 치고 불란을 만드는 낮은 수준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고 본다.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때 대립과 분열에서
벗어나서 더 높은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PS. 위에 인용한 글은 왜 다른쪽 극단에 서있던 사람이 어이없게 반대쪽 극단으로
가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해주게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극단에 서있지 않지만 , 극단에 서있는 사람들은
모든것을 극단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쪽 극단이 아니다라고 생각되면
그 중간으로 가기보단 다른 극단으로 가기 때문이다.
전혀 반대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의 이해에 있어선 같은 관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뉴XXX 같은 단체의 탄생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을 투명하기 바라보기 보단 그 사실을 왜곡하고 색깔을 입히는데 집중하고
반대를 위한 에너지를 조장하고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PS. 문제는 따지고 보면 양쪽 극단 모두 소수인데
목소리를 내고 주도해가는 사람들이 양쪽 극단이라는데 있다.
중도적 대중은 소외되고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PS.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부류는 "이야고" 같은 부류이다.
오델로의 '이야고' 캐릭은 , 이현세씨 만화의 '마동탁' 같은 캐릭이다.
이러한 캐릭터가 집중하는 것은 꼬투리를 부풀려서 치밀한 작전과 계획으로
모종의 이익을 위해서
끊임없는 '중상모략'과 '이간질' 이다.
이 사람들이 노리는 것은 '대중이 생각하지 못한' 전혀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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